일상

학문의 '발명'과 '발견'

theplainest 2024. 8. 20. 17:23

학문은 '발명'되는 것일까, '발견'되는 것일까?

우선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로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발명(發明)
: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하여 만들어 냄.
발견(發見)
: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

 

물론 학문이 기술이나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학문-보통 수학이나 물리학-이 발명인지, 발견인지 논하곤 한다.

이 글에서 학문의 발명이라 함은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의 이치'와 같은 건 없거나, 찾을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학문은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므로, (만약 찾을 수 있다면) 외계인의 학문과 지구의 학문은 완전히 다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반대로 학문이 발견되는 것이라 한다면 우주의 어떤 진리를 인간이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계 지적생명체도 지구에서의 학문과 동일하게 발전해야 한다.

 

물리학의 경우

물리학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발견 같아 보인다. 흔히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사실 물리학은 발명에 가깝다. 예를 들어 만유인력은 뉴턴이 고전역학으로 설명해 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사실 만유인력은 시공간이 휘어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어떤가? 만유인력은 과연 인간이 발견한 것일까? 사실 자연에는 만유인력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는데, 인간은 대부분의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세우고 자연을 여기에 끼워 맞출 뿐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물리학도 '발명'되는 것인 마당에, 화학은 당연히 발명되는 것이다. 어떠한 화학 이론도 자연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기존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금씩 나은 이론이 제시되면서 발전할 뿐이다. 칼 포퍼의 '반증주의'도 (물론 현대 과학철학의 주류가 아니지만...) 이렇게 과학이 어떤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한편, <길 위의 수학자를 위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책을 보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단순성'에 기초를 두어 거듭 발전하기 마련이고, 현재로서 상대론은 물리 법칙을 설명하는 가장 단순한 이론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리학이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고도로 발전하게 되면, 물리 이론이 더 직관적이고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인류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인가? 설령 자연의 기본 원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수학의 경우

어렸을 때는 수학이 발견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수학은 우주의 진리라서 항상 참이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고, 이것이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뭔가 잘못됨을 깨달았던 건 '거리의 추상적 정의'를 접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해석학에서는 metric이라 부르는 거리함수를 정의하는데,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거리'로서 잘 동작할 수 있다.

1. $ d(x,y) \ge 0, d(x,y)=0 \Leftrightarrow x=y $
2. $ d(x,y) = d(y,x) $ (대칭성)
3. $ d(x,y)+d(y,z) \ge d(x,z) $ (삼각부등식)

 

실제 세계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리'를 이렇게 정의하여, 실제 세계뿐만 아니라 추상적 요소에서까지 거리를 확장시킬 수 있다. 수학이 발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발견된 '거리'를 추상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다. 이 정의는 '거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명했다고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해 보인다.

 

물리와 달리 수학의 경우는 무엇이라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 어떤 학자는 발견이라 주장하기도, 발명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집합론 쪽을 생각하면 수학이 '발명'임에 힘이 실린다. 현대 수학의 표준적인 공리계인 'ZFC 공리계'만 생각해 봐도 공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수학 이론이 완전히 뒤바뀔 테니 말이다. 예를 들어 연속체 가설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실례로서 ZFC 내에서 증명하기도, 반증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인간이 연속체 가설을 참이라고 보는 공리계를 잡거나, 거짓이라고 보는 공리계를 잡을 수 있으니 수학은 그야말로 '발명'이 아닌가.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는 칸토어의 유명한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기하학을 생각해 보면 수학은 발견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나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 (흔히 $v-e+f=2$라고 표현하는 것)를 생각하면 인간이 존재하든, 그러지 않든 성립하는 식이다. 인간은 그저 이러한 규칙성을 찾아내고, 증명하여 수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리

물리학은 발명에 가까운 반면, 수학은 단순 발견과 창조적 발명의 속성이 함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수학인지 발견인지, 발명인지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외계 지적생명체의 학문이 우리 학문과 얼마나 비슷할지는 여전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영화 <컨택트>를 보면 외계인이 시간을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원형으로 인식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상상도 못할 정도로 외계인과 인류가 생각하는 개념이 다를 수 있으니, 학문이 완전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난 신을 믿지 않지만, 정말로 신이 수학자여서 수학자 에르되시 팔이 말하는 'The Book'을 기반으로 우주를 만들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수학이 발견이냐 발명이냐 하는 것은 '믿음'의 영역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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